마음건강

마음챙김 그 느낌 2 (그 느낌 알아보기)

calmoneself 2023. 5. 1. 04:00

그 느낌 마음챙김

 

  명상은 고통을 소멸하는 길로, 새로운 어떤 마음을 획득하는 과정이 아니다. 다만 고통을 발생시키는 조건지어진 마음의 현상을 그 자체로 자각하여 수용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느낌을 존재한느 그대로 관찰하여, 휩쓸리거나 저항하지 않는 채로, 그 본질을 통찰한는 과정이 명상이다. 내 몸 안의 여섯 가지의 감각에서 발생되는 느낌을 포착하는 알아차림의 단계가 '사띠'다. 알아차림은 비유하면 어둠 속에서 전등으로 대상을 향하여 비추는 것이다. 다만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를 조명하는 지각의 일종이다.하지만 그 결과 로 알려지는 대상에 대한 바른 이해와 구별된다. 여기서 말하는 완전한 앎이란 대상에 대한 전체적인 특성으로서 무상을 경험적으로 분명하게 아는 지혜를 의미한다.

느낌을 어떻게 관찰하는가? 일단 호흡에 마음을 집중해 편안하고 고요한 상태를 유지한다. 마음이 준비가 되었으면 신체의 중요한 부위를 일정한 순서에 따라 관찰한다. 순서는 본인이 편한 대로 하되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례로 내려갔다가 다시 반대로 등 뒤쪽으로 올라오면서 신체의 각 부위의 느낌을 검색한다. 이것은 감각에 접촉하면서 발생되는 느낌을 검색하는 것을 말한다.

즐거운 느낌을 경험하면 "나는 즐거운 느낌을 경험한다."라고 분명히 알고, 괴로운 느낌을 경험하면 "나는 괴로운 느김을 경험한다."라고 분명히 알고, 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는 느낌을 경험하면  "나는 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한다."라고 분명히 안다. 어떤 특정한 느낌이 강하게 발생한다면 그 느낌에 충분하게 머물러서 지켜보라.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분명하게 깨어나서 바라보라. 그러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호흡과 함께 지켜보면 그 느낌은 약해지거나 사라진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접촉을 조건으로 즐거움의 느낌이 생겨나지만 그 접촉이 소멸하면 그것에 의해 발생되고 경험된 즉,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거움의 느낌은 소멸하여 그쳐 버린다. 바꿔 말하면 두 개의 부싯나무가 서로 마찰하여 화합하면 연기가 나며 불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그 두 개의 부싯나무가 갈라서거나 떨어지면 거기에서 생겨난느 연기는 소멸하여 그쳐 버린다.

이와 같이 여섯 감역의 접촉에서 생겨난 느낌이 라는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무상한 것이다.

세존께서는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이고,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느낌을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라고 여기는 것이 옳지 않다고 '라훌라'존자에게 말씀하셨다.<쌍윳따 니까야'느낌의 경'>

"수행자여! 수행자는 감각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분명하게 안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덧없음에 대한 바른 이해와 마음의 고요함에 근거한 알아차림(sati)으로써 느낌이 사라지는 전 과정을 온전히 관찰하여 갈망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한 해탈을 경험한다."

이 해탈로 가는 도 닦음이 팔정도로, 여기 현전하는 느낌에 대한 관찰을 통해 부처님께서 고구정녕하게 가르치신 ※고집멸도의 사성제 진리를 완성할 수 있게된다.

우리는 자신이 '성냄'을 쉽게 인식하지만 성냄의 감각느낌을 관찰해보지는 않는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성냄의 격류에 휩쓸리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격하려는 마음이 앞서거나 아니면 성냄 자체를 감추고 회피하려 한다. 이러한 습관화된 자동반응으로 성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성냄현상을 알아차리고, 거기서 머물러서 지켜보라. 무엇이 발견되는가? 그곳에서는 성냄이 존재하는가? 우리는 성냄을 관찰할 수 없다. 그 대신 우리가 관찰한 것은 열기, 거친 호흡, 빨라진 맥박 등 신체의 감각 느낌들이다. 성냄은 사회적인 언어적 표상, 개념 일 뿐이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통찰을 대승불교에서는 반야, 텅 비어 있음에 대한 통찰이라 한다.

이 같은 선례는 선종의 선 문답에서 쉽게 발견된다. 혜가는 '마음이 불편하다'고 하면서 달마에게  '편안한 마음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달마는 단도직입적으로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오라'고 말한다. 혜가는 불편한 마음을 찾아보았지만, 결국 어디에서도 불편한 마음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혜가는 '불편한 마음을 찾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자 달마는 혜가에게 '그러므로 너에게 편안한 마음을 주없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혜가는 근본적으로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가 무엇을 새롭게 성취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한 상담자인 달마도 혜가에게 준 것이 없다. 다만 조건지어진 마음의 실체를 존재하는 그대로 보도록, 그의 명상을 조금 도왔을 뿐이다. 이것이 진실이다.

 

※고집멸도

불교의 근본 원리인 사제(四諦)의 첫 글자를 따서 이르는 말. ‘고’는 생로병사의 괴로움, ‘집’은 ‘고’의 원인이 되는 번뇌의 모임, ‘멸’은 번뇌를 없앤 깨달음의 경계, ‘도’는 그 깨달음의 경계에 도달한 수행을 이른다. 불교의 사성제는 사제(四諦)ㆍ사성제(四聖諦)ㆍ사진제(四眞諦)라고도 한다. 미망(迷妄) 속에 살고 있는 중생들의 생존은 그대로 괴로움이고(고제), 이 괴로움은 모두 망집(妄執)에서 생기며(집제), 이 망집을 완전히 극복한 상태가 열반이고(멸제), 열반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팔정도(八正道, 도제)를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집멸도 [苦集滅道] (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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